눈싸움이 독립전쟁으로?

** 눈싸움이 독립전쟁으로? **

아이들 싸움이 어른들 싸움으로 번지는 수가 있다. 별것이 아닌 아이들 싸움이 부모들 싸움으로 발전되는 이유는 대개 부모들 사이에 이미 감정의 앙금이 있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던 부모들이 아이들의 싸움을 기화로 더욱 감정이 나빠지면서 폭발하여 대판 싸움이 되기 쉽다. 미국의 독립전쟁도 이처럼 아주 사소한 일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독립전쟁이 1760년 보스턴에서 일어난 눈싸움에서 시작되었다고 흔히들 말한다. 심각한 독립전쟁이 단순히 자그마한 눈싸움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하기에 앞서, 이미 아메리카 영국 식민지와 영국 본국 사이에는 좋지 않은 감정이 형성되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영국은 1650년대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프랑스와 전쟁을 벌여서 겨우 이겼다. 그러나 전쟁을 수행하느라 돈을 너무 많이 지출한 까닭에 아메리카 식민지인들에 온갖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인지세, 설탕 세 등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차(Tea)에 대해서도 세금을 물렸다. 겉으로 내건 이유는 프랑스와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면서 들어간 돈은 식민지인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이유는 영국 동인도 회사에 이윤을 높여 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많은 영국 정치인들이 동인도 회사에 지분이 있거나 이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영국의 가혹한 처사에 일부 식민지인들이 독립해야 한다고 부르짖기 시작했다. 벤저민 프랭클린 같은 사람은 “대표 없는 곳에 세금도 없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식민지인들은 국회의원을 선출해서 영국 의회에 내보내는 권리가 없었던 것이다. 일반 시민들도 “울고 싶은데 누가 때려주었으면…”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때였다.

때는 1760년 3월 어느 날, 한 무리의 시민들이 공공건물에 경비를 서던 영국군인들에게 눈 뭉치를 던졌다. 이것을 보며 지나가던 다른 시민들이 합세해 눈을 던지기 시작했다. 겁을 먹은 경비병들은 다른 군인들을 불렀고, 급기야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기 시작했다. 소수의 군인은 최후 수단으로 군중에 대고 발포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 발포로 보스턴 시민 5명이 사망하는 사태로 발전하고야 말았다. 그런데 더욱 아메리카 식민지 사람들을 화나게 한 것은 발포한 군인들에 대한 재판 결과였다. 영국 법원은 이 군인들을 무죄로 방면했다. 그 후 민심이 극도로 악화하자 각종 세금을 없애겠다고 약속하며 민심을 달래려 노력했지만,  일단 돌아선 민심을 되돌이킬 수가 없었다.

그 후 보스턴 티파티 사건이 일어나고, 식민지인들은 민병대를 조직하여 영국에 대항하기에 이르렀다. 이윽고 13개 식민지 대표들이 모여 1774년의 1차 대륙회의와 1775년의 제2차 대륙회의를 개최하여 식민지 모두 합심하여 영국에 군사적으로 대항하기로 했다. 결국, 독립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전쟁을 치르는 중인 1776년 7월 4일에는 13개 식민지가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게 되었다. 식민지가 영국과 아직도 전쟁 중이어서 완전 독립을 이루다고 볼 수는 없지만, 미국은 1776년 7월 4일을 독립일로 삼는다. 아메리카 식민지들이 영국과의 전쟁에 돌입하자 프랑스와 네덜란드는 적극적으로 식민지를 돕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두 나라 모두 영국에게 빼앗긴 식민지가 많아 영국과는 앙숙인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인연으로 프랑스는 미국 독립 100주년인 1876년에 자유의 여신상을 미국에 선물하기도 했다.

어떤 학자들은 영국이 식민지 사람들이 국회의원을 선출할 수 있도록 해 주었더라면 미국의 독립은 1776년에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랬더라면 지금의 세계 판도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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